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22년 러시아 동원령 (문단 편집) === 국가적 역량 차이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은 국가적 상황으로만 따지면 현재의 러시아보다 더 안 좋았다. 3년간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국민들은 지쳤고 국내의 모든 물자는 바닥이 났으며,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의 안정도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혁명이 일어나고 얼마 안 되어 [[러시아 내전]]이 터졌으며, 이 과정에서 [[협상국]]이나 [[시베리아 출병|일본군]] 등 외국의 군대가 소련 영토로 진입하기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러시아 제국 시절 러시아의 영토였으나 혁명과 내전을 틈타 독립한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과 다시 [[소비에트의 서방 공세|전쟁]]을 벌였으며, 저 중 폴란드와의 전쟁인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는 폴란드에게 패배하였다. 그 후 1920년대 중반~1930년대 후반까진 전쟁은 없었으나, 집권한 스탈린이 정적을 향한 광적인 [[대숙청]]과 심각한 [[우크라이나 대기근|대기근]]이 있었으며, 폴란드에게 깨진지 20년도 채 안된 1939년에는 다시 핀란드와 [[겨울전쟁]]을 벌였지만 이 전쟁에서는 보급부족과 대숙청 영향으로 유능한 장교진들이 다 썰려나갔기에 병사는 배고프고 장교들은 무능한 상태인 소련군은 졸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오죽하면 일화 중 소련군이 핀란드군 보급기지를 공격했는데 당황한 핀란드군이 후퇴하였고 원래대로라면 추격해야 했으나 문제는 배가 고팠던 소련군은 삶고 있던 소세지를 보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먹는데에만 집중하다 보니 핀란드 군은 대다수가 무사히 후퇴한 것도 모자라 이들이 곧바로 재정비해서 먹고 있던 소련군을 공격해서 승리를 거둔적이 있다. 이때 오죽하면 총에 맞고 부상당한 소련군은 피를 흘리던 와중에도 먹고 있던 소세지를 씹으면서 먹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소련군의 보급체계가 얼마나 안이했는지 알 수 있다.[[https://blog.naver.com/citrain64/100201435413|#]] 결과적으론 동장군이 지나자 물량공세로 핀란드에게 카렐리야 등의 영토를 획득함으로써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긴 했으나. 핀란드를 [[만주국]]처럼 [[핀란드 민주 공화국|괴뢰국]]으로 만들거나 아예 소련의 일부로 병합하려던 원래 계획은 달성하진 못했으며, 소련군이 핀란드군 사상자의 5배에 이르는 사상자를 냄으로써 전략적으론 실패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소련은 피폐해진 국력, 역시 오랜 분쟁과 가난으로 쇠약해진 국민들, 내부적 숙청으로 매우 약화된 군 전력 및 국가 행정력, [[이오시프 스탈린|병적인 의심을 가진 독재자]] 치하에서 약화된 의견 수립 능력 부재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본 나치 독일 측에서 약소국 핀란드도 확실히 제압하지 못한 소련을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반면에 러시아는 여전히 내부적으로 문제는 많지만 [[남오세티야 전쟁]],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 [[시리아 내전]] 개입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한편 전쟁 상대방과의 경제력 차이는 소련과 나치 독일의 차이가 좀 더 작은 편이다. 당시 소련은 과학에 관심이 많던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을 통해 중공업으로 산업 구조를 바꾸는 데에 성공하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 1929년 [[대공황]]의 영향을 적게 받은 소련의 경제는 주요 열강 중 미국 다음으로 튼튼한 편이었다. [[나치 독일]] 역시 GDP 총합으로 세계 2~3위를 다투는 수준으로, 전쟁 발발 당시 소련과 비슷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고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후 1~2년 동안 승승장구하여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거의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으며 영국도 촘촘한 대공망으로 버티고 괴링의 삽질 덕에 독일을 겨우 막아내었으나 영국조차 본토 완벽사수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아무리 [[소련 붕괴]] 이후 경제 침체를 겪었다곤 해도, 우크라이나는 몰도바와 더불어서 유럽에서 1인 당 GDP가 가장 낮은 국가였으니 비교 자체가 어렵다. 전쟁 초기 진행 과정을 비교하면 당시 러시아보다는 우크라이나가 오히려 소련과 더 비슷하다. 소련은 나치 독일에게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선제 공격을 당했으며 개전 직후의 엄청난 타격을 입고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바르바로사 작전은 모스크바 함락이라는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전술적으로는 소련의 군사역량, 인구밀집지역, 산업시설, 곡창지대 등을 날리는 성과를 거두는 등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전이며, 프랑스의 항복 이후 홀로 독일과 싸우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조차 바르바로사 작전 소식을 듣고는 소련은 끝났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역시 선제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국력 차이도 큰 탓에 서방 지도자들도 이제 우크라이나는 끝났다고 판단하였고, 미국은 아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피난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초반 급습 역시 당초의 목표였던 [[키이우]] 점령을 통한 빠른 종전에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실패하였으며 독소전쟁 당시의 독일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영토 내부로 러시아군을 앞세워 신속히 밀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